Skip to main content

승리 한 그릇

  • 작성일: 2012년 7월 13일 오전 4:42
  • 원작: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

2012년 7월 13일 오전 현재, 對 히어로즈 상대전적 4승 7패. 6연패인 상태로 히어로즈와의 3연전을 맞이해야하는 심란한 마음의 13일의 금요일 기념 트윈스 헌정작

2010년 어느 날 시즌이 시작되려는 시간. 잠실구장으로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히어로즈라 불리는 사내들 한 무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 최저연봉을 받고 있는 신인들이었고, 행색을 봐서도 그리 넉넉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보였다. 3루측 덕아웃에 앉아있던 이들 중 감독으로 보이는 나이많은 남자는 주춤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승리 한 그릇'을 주문하였다. 인심 좋은 쌍둥이는 KBO와 다른 6개구단 몰래 승리 1인분에 현금 40억 + 쩌리 선수 둘을 더 얹어주었다. 듬뿍 담아 주고 싶었지만, 그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많이 담지는 못했다. 히어로즈는 팀원들과 함께 승리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눠 먹고는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이택근을 주고 돌아갔다.

1년 뒤 2011 시즌, 역시나 히어로즈는 승리 한 그릇을 주문했고, 쌍둥이는 역시 반가이 맞으며 12승, 박병호, 심수창을 더 담아 주었다. 그 다음 해 같은 날, 폐점이 가까워 질 무렵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 내외가 메뉴판을 차례차례 뒤집었다. 전력 평준화로 인해 올라있던 승리값을 다시 작년과 똑같은 가격으로 바꾸어갔. 앞서던 상대전적 메뉴판은 4승 7패(7월 13일 현재 기준)로 둔갑되었고, 또한 3루측 덕아웃에는 히어로즈전 30분 전부터 '승리팀'이라는 펫말이 놓여있었다. 그들은 매년 같은 시간에 들려 항상 승리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난 후 어김없이 시즌이 시작되었는데, 가게문이 닫을 시간이 훨씬 지나도 히어로즈팀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또 몇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많은 세월이 지나도 쌍둥이는 히어로즈를 잊지 못하고, 그들이 앉아 승리를 챙기던 3루측 덕아웃을 항상 비워두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먼 지방에 있는 지방팀들도 애써 승리를 챙기러 찾아올 정도로 쌍둥이는 전국구 호구팀으로 유명해졌다.

어느 시즌이 시작되는 날, 손님으로 가득 찬 잠실구장에 다수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젊은 청년 몇명과 연륜이 묻어나는 중년 남성 한명이었다. 쌍둥이는 단번에 그들이 그때의 히어로즈임을 알았고, 반가이 웃으며 그들을 위해 비워두었던 그 3루측 덕아웃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서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구단운영으로 인해 우리담배가 스폰을 중단하였기에 팀 운영비로 마이너스 통장과 사채를 써 어마어마한 빚더미를 짊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감독과 코치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 선수들을 팔러 다녀야 했고, 어린 팀원들도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집에서 밥과 빨래를 하고 감독과 코치의 몫까지 다 해야했었다. 변변치 않은 형편에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건 승리 셔틀이었던 호구 쌍둥이들 때문이었고, 승리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윕과 유망주, 현금까지 퍼다주며 알아서 DTD까지 시전해주던 쌍둥이를 보며 더 힘낼 수 있었다고... 그 때 1인분보다 더 많이 주었다는 걸 히어로즈팀은 다 알고 있었다.

몇년동안 악착같이 살던 히어로즈 팀원들을 스폰비도 잘 챙겨주고 계약도 연장해주는 넥센 타이어가 스폰을 하게 되었고, 감독과 코치는 그렇게 선수들을 팔며 많던 빚을 모두 청산하게 되어 5할권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가장 큰 형은 4년간 50억에 계약을 했고, 주워왔던 박병호, 서건창도 포텐이 터져 주전 대접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그 시절 승리 한 그릇을 먹던 그 때, 그 친절함과 호구의 맛을 잊지 못해 인사를 하러 다시 잠실구장에 왔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쌍둥이와 히어로즈, 그리고 테이블을 꽉 채운 남은 6개구단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