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하며 생긴 병신같은 일화
- 작성일: 2012년 8월 15일 오전 1:02
나같이 좋지 않은 롤 실력을 가진 사람들의 태반은, 스티븐 시걸의 가벼운 손동작에도 쉽게 부러지는 악당들의 목뼈마냥 연약한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다. 수많은 멘탈병신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신나고 개같은 이야기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병신같았던 경기는 불과 몇시간 전, 내가 잭스를 잡고 탑에 간 경기였다.
우리팀 정글이었던 아무무는 경기 개시 직후 “늦으면 어시 없음.”을 선언하며 불꽃같이 상대 블루를 향해 인베이드를 나섰다. 먼저 부시에 도착한 아무무는 무조건 성공한다며 우리를 안심시키던 도중 상대 블리츠의 거침없는 손에 이끌려 퍼블을 내주고는 이승을 탈출하게 된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을까. 그와 동시에 그는 바람이 되어 소환사의 협곡을 떠나버렸다.
우리팀 원딜은 트리스타나, 상대팀 원딜은 트위치였다. “4대5라서 불리하지만 오라클만 있으면 상대 트위치는 300원짜리 미니언”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던 그. 하지만 라인전에서 계속 무상 킬을 내주며 오라클은 커녕 핑와 하나 박을 수도 없을만큼 극렬한 가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미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한 트리스타나. 결정타로 상대팀 원딜이었던 트위치가 전체 채팅으로 트리스타나에게 도발을 시전한다. 결국 분노 억제기를 파괴시켜버린 트리스타나는 욕설 슈퍼미니언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한다. 트리스타나는 상대 트위치 부모님의 안부를 묻기 시작하고, 트위치 또한 그의 안부인사에 화답하며, 그들은 한 여름인 이 8월에도 채팅창을 *** ← 이렇게 생긴 함박눈으로 만연하게 만들었다.
트리스타나와 트위치, 양쪽의 친지들이 하나둘씩 채팅창에 언급되며 상견례를 시작하던 시간은 경기 시작 15분 후. 어차피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지한 나는 서렌 시간도 5분 정도 남고 해서 “투항하겠소. 조공으로 우리팀 블루를 드릴테니 부녀자들은 건드리지 마시오.”라며 구두로 적팀에게 항복의사를 미리 전하였다. 그러자 나의 탑 라인 상대였던 트린다미어는 “그렇다면 부녀자 대신 블루를 먹겠소.”라는 패드립을 시전하며 나의 항복 선언을 받아들였다.
나는 감사의 의미로 양가 어르신 상견례로 바쁜 트위치와 트리스타나, 그리고 장렬히 협곡을 떠난 아무무를 제외한 6명에게 우리 팀 블루골렘 리젠 자리에서의 댄스파티를 제안하였다. 초청장을 받은 각 진영의 인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블루진영, 퍼플진영을 막론하고 그들은 각자가 가진 춤사위를 거침없이 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투항선언 속에서도 몰래 정글을 돌며 야심차게 탐식의 망치를 사두었다. 그들은 평범하게 느꼈을 댄스파티, 나에겐 마치 유비와 유장의 장수들이 서로에게 검무를 추며 극도의 긴장감을 주었던 그 술자리처럼 느껴졌다.
댄스파티 중 유난히 적은 피통으로 파티장에 당도한 아무무의 원수 블리츠. 그에게 난 춤을 추다 말고 갑자기 E - Q - 평타 - W - 평타를 날리며 야심차게 1킬을 올리고자 하였으나, 블리츠를 이승 탈출 시키기엔 나의 딜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결국 라이즈에게 분노의 콤보를 처맞으며 배신자의 수순인 잔인한 응징을 당하게 된다. “아무무 형제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니...”라는 개드립을 시전한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상대팀은 채팅창을 또 한번 함박눈으로 뒤덮어줬으니, 이는 마치 이차돈의 순교장면과 흡사했으리라.
하지만 적 블리츠의 피통 반도 깎지 못했던 나의 콤보는, 억압받고 있던 우리 팀에게는 일종의 독립운동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며 그 작은 파티장 안을 온갖 스킬들과 이펙트의 향연으로, 혹은 최후의 저항에 대한 의지로 뒤덮이게 만들었다. 결국 댄스파티를 가장한 우리의 작은 혁명은 상대팀에게 무력으로는 처참하게 진압당하였지만, 우리의 올곧은 정신만은 (혹은 키보드로는) 자주국권을 지키며 정신승리를 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분이 되고 서렌을 친 뒤, 그들은 놀이터에서 모여 놀다가 부모님의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에 손 흔들며 떠나는 동네 친구 아이들처럼 서로를 리폿하며 사이좋게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