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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 작성일: 2012년 8월 1일 오전 12:20

피씨방에서 있었던 일. 항상 같이 게임을 하는 그들과 함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고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서포터 포지션에다가 거의 처음 해보는 알리스타를 하고 있었기에,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영혼을 실은 집중을 통해 오감으로 플레이하고 있었다.

내가 급초반엔 잠시 흥했다가 급격히 싸기 시작했고, 후에 다시 회복하며 상대팀 미드 억제기를 밀고 전세를 역전한 찰나, 내 컴퓨터가 매정하게 프로그램을 하나씩 강제 종료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숨을 거둬버렸다. 재빠르게 주위에 엠비씨 기자가 있나 체크를 해본 뒤 없음을 확인하고는, 범인은 선불 요금이 끝나고 자동으로 후불로 바뀌게 놔두지 않고 그냥 꺼버린 알바 밖에 없을거란 생각에 슈렐리아를 쓰고 카운터 앞에 있던 여자 알바에게 달려가서 “아 이게 뭡니까, 대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궁 쓰고 거친 콧바람을 내며 달려오는 알리스타와 같은 겜덕후의 분노에 식겁한 그 여자 알바는 내가 뭐 때문에 이리 분노하는지도 모른 채 “헐 죄.. 죄송합니다..ㅠㅠ"라며 사과했다.

알바가 할 수도 있는 실수. 하지만 순간적으로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린 이 한국 남성(이현석·가명, 만 24세)은 여자 알바에게 “지게 생겼잖아ㅠㅠㅠ”라는 초딩들도 하지 않을 유치한 멘트를 시전해버렸다. 가장 후회되는 대목이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었다면 ‘피식'하고 웃을 멘트였지만, 진정성 넘치는 나의 대사에 그녀는 나의 게임이 국운이 걸린 한판 승부라던가, 혹은 상금 수백만원 이상의 큰 게임대회로 생각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후회와 통한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통제력 상실이 극에 달하며 온 몸이 지방자치를 실현하려던 찰나, 알바의 아름다운 외모가 눈에 들어오며 급격하게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내가 고함을 지르거나 땡깡을 부린건 전혀 없었지만, 이 피씨방에 다신 안 올 것처럼 혼자 분노했으면서, 결국엔 “빨리 만원 충전요!”를 외치며 빠르게 자리로 돌아갔다. 게임에 다시 들어가보니 지속되던 5대 4 경기로 인해 이미 전세는 다시 역전당해있었다.

몇분 뒤, 매니저가 나에게 찾아와 “저 알바가 엊그제부터 일 시작해서요... 죄송합니다. 금연석에서 선불 충전해 사용하셔서 초등학생인줄 알고 껐다고 합니다.”라며 아이스커피를 건네주었다. 그리곤 매니저가 그 아름다운 알바를 청소도구 보관방으로 부르더니 따로 나무라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초등학생인줄 알고...”, “금연석에 선불로 앉아있다고 해서 다 초등학생이 아니야. ‘저런’ 사람이 어딜 봐서 초등학생이야...” 그가 나무라는건 알바인가, 나의 외모인가...

어쨌든 팀은 졌고 게임은 간단히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모든 일들이 정리되며 좀 부끄러워졌다. 알바가 실수한거고, 내가 땡깡부린 것도 아니며 같이 게임했던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니까 미안해서 그런거긴 하지만 어쨌든 게임가지고 그러지 말아야지.

■ 요약: 피방 알바가 게임 중 내 컴 꺼버림. 이성의 눈을 감아버린 나는 리신이 되어 알바에게 QQ로 빠르게 다가가서 EE 콤보 후 마지막 단계인 리신 궁을 작렬하려는 순간, 아름다운 외모의 알바는 나에게 매혹을 시전하였고, 그 사이 매니저는 칼서렌을 하게 된다. 게임은 이겼지만, 부끄러움을 느낌.

■ 시사점: 나는 26살의 나이에, 아름다운 여성에게 초등학생으로 오해받을만한 외모의 소유자였고 (전혀 아님), 그녀는 피씨방 매니저에게 매서운 비난을 받을만한 안목의 소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