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야구인생 답사기
- 작성일: 2013년 10월 7일 오후 10:53
할아버지는 매우 독실한 엘지 트윈스 팬이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록지를 들고 야구장을 다니셨다고 한다. 전에 할머니 말고 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할아버지께서 한숨을 쉬고 계시길래 상심이 크신가 싶어 다가가 도착했다고 인사 드렸더니 “박용택이 요새 너무 물빠따야, 에휴...”라며 세미 패드립을 시전하셨던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당시에 아버지께서 증오해 마지 않으셨으며 항상 등판할 때마다 “아 또 엘지 지겠네!”라고 한탄을 금하지 않으셨던 앤더슨이라는 엘지의 방화범 용병 마무리투수가 있었다. 어린 나는 아버지께서 보시던 경기에서 앤더슨이 또 등판하길래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어? 이번에 엘지 또 지겠네요?”라고 했다가 당시 150 안팎이었던 내 키가 2미터까지 늘어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27살이 된 지금까지 모두 포함하더라도, 그것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엄청나게 정색하며 화내셨던 유일한 기억이다. “내 단원들 함부로 무시하는거 저 못 봐줍니다! 이 사람들 무시할 권리는 오직 저에게만 있습니다!”라던 강마에가 생각난다.
집안 모두 엘지팬이었던 것과 달리 초등학생 때 나는 현대 유니콘스의 팬이었다. 당시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이 인천이기도 했고, 센팀내팀짱짱팀 마인드에 입각하여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엘지팬이 되는 것을 거부했었다. 그러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초반까지는 박찬호, 김병현 등의 코리언 메이저리거 활약에다가 메이저리그 야구게임에 재미들리게 되면서 한국야구 개무시하고 취급도 안 하는 메이저리그 팬짓을 몇년 했었다.
하지만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며 미어켓, 멧돼지놈과 함께 벌레나 처먹고 놀던 한량 사자새끼도 결국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왕국을 되찾으러 돌아갔던가. 대충 05년, 엘지에서 신나윤호, 경유헌호, 등유규민, 김민기름, 휘발류택현 등 방화신기 멤버들의 방화기량이 절정으로 만개했을 그 무렵, 가혹한 집안의 운명을 받아들여 엘지 트윈스 팬이 되었다. 그 한량 사자새끼와 내가 차이가 있다면 내가 찾으러 간 것은 왕국이 아니라... 흠… 아버지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3대 악(惡)이 있다면 그것은 빚, 탈모유전자, 그리고 엘지 트윈스 팬일 것이다.
내가 정글 한량의 삶을 포기한 그때부터 엘지는 이순철, 김재박의 암흑기를 거치며, ‘‘사랑한다 LG’는 엘지를 제외한 남은 7개구단의 응원가’, ‘가을야구는 우천취소가 많이 됐거나 올림픽으로 인한 시즌 중단 때문에 정규시즌이 길어졌을때나 하는 것’ 등의 부정적인 인식이 나에게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래도 별로 아쉬울거 없었던건 내가 본격적으로 팬이 된 이후에 단 한번도 가을야구를 해본 적이 없는 팀이었기에 그냥 그런건가보다 하면서 지냈기 때문이었던거 같다. 나름 좋은 드립거리이기도 했고.
그러다 올해 이렇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게 되었다. 처음 4강 확정됐을때도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었고 (오히려 성적 안 좋고 돈만 쓰는 병신팀 이미지가 사라져서 아쉽기도 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볼 때에도 별 생각없이 봤었는데, 경기가 엘지 승리로 거의 다 기울었던 8회에 엘지팬들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잡혔을때 나도 모르게 그깟 공놀이 때문에 조금 울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동안 엘지가 마음 속에 많이 자리잡았었나보다. 하긴, 작년 취업시즌에 LG와 SK 중에 어디 갈까 하다가 별 고민없이 그냥 LG 갔던 것도 그 영향이 컸었던거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고맙다. 4강 가준 것도 고맙고 게다가 시즌 중에 1위도 한번 해보고 2위로 시즌 마감한 것도 고맙고. 내가 샀던 유니폼, 유광잠바, 직관 티켓들 다 해봐야 최저연봉 신인의 월급도 못 줄 만큼 밖에 안 됐겠지만 (그 정도는 될래나?) 작은 응원이나마 보탬이 됐었으면 좋겠다. 내일부터 포스트 시즌 시작인데 큰 부상없이 올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