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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소시민의 리그 오브 레전드 즐기는 이야기

  • 작성일: 2012년 2월 18일 오전 3:38

오늘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러 피씨방에 갔다. 과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기던 시절에도 게임에 대한 재능 부족과 과도한 긴장감 등으로 인해 파티원들에게 수많은 질타와 무시를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떠나게 된 나는, 이와 같은 대중의 비난이 두려워 차마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기본이 되는 사람 대 사람 - 5 대 5로 플레이하지 못하고 언제나 그렇듯 컴이나 까고 앉아있었다. 이 기세면 레벨 30을 컴까기로 찍을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상에는 나와 같이 세간의 비난을 피해 한낱 금속 덩어리들이 만들어내는 얄팍한 인공지능을 구타하며 여흥을 얻고자 하는 나약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 5명을 모아 컴까기 하는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이러한 소시민 마인드로 컴까기에 임하는 사람들 다섯명이 모인 그 맵은 소환사의 협곡이 아닌 소시민의 협곡이라 불러도 될 듯 하다.

하지만 그 나약한 근성과 결여된 자신감이 컴까기라고 해서 어디 가겠는가. 게임에서조차 우리들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증명하듯, NPC 두명에게 쫄아서 4~5명이 스킬까지 써가며 광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한타 싸움이 벌어질 때엔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고 킬수나 챙겨서 달아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막타만 노리다가 결국 팀원 모두가 흑백화면 왼쪽 구석의 붉은 카운트를 한 마음으로 쳐다보게 되는 아름다운 동행을 실천하는 등 콩가루 조직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오늘도 가스통을 들고 적에게 쫒기며, 제발 나의 도트데미지가 막타가 되기를 바라며 전력으로 질주하던 나의 신지드는, 적이 분명 나의 도트 범위 내에 있어서 놔둬도 그냥 죽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즉시 시전 기술, 심지어 궁극기도 마다하지 않는 팀원들의 배려 속에서 킬수를 챙기지 못한 채 쓸쓸하게 도태되어갔다.

허나 이러한 소시민 마인드와는 별개로 게임의 재미는 언제나 존재한다. 오늘도 나와 함께 약 10시간을 피씨방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컴까기로 보낸 황선생님께서는, 오늘만은 집에 들어가서 일찍 자야 한다며 자정 취침을 공언하셨지만, 결국 마음을 바꿔 카톡으로 딱 2판만 하고 잔다고 하셨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내가 리그 오브 레전드 하느라 못 본 위대한 탄생을 다 다운받아서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오전 3시 28분)까지도 접속하셔서 컴을 까고 계신다. 이 작금의 사태는 슬프긴 하지만 동시에 이 게임의 재미를 증명한다. 황선생님은 게임 보는 눈이 높으시기 때문이다. 2판만 한다고 하지 않았냐며 질문하는 나에게 "혈전이라 길다."라고 비장하게 말씀하시는 황선생님의 귓말은, 수천년 지속된 이민족의 침략 속에서 우리 민족을 지켜냈던 수많은 전쟁영웅들을 떠오르게 했다. 역시 우리는 대단한 민족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고구려는 컴을 까지는 않았다. 우린 소시민이니까 당분간 컴 까기밖에 할 수가 없다. 또한 당분간 인간답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