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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등록일: 2026-07-22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취지의 글을 봤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치를 아는 것은 상식인가?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이 정도는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방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전라도와 경상도가 어디쯤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지도에서 두 지역의 대략적인 위치조차 모른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대학 시절에 만났던 서울 출신 동기들 중에는 부산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그 친구들은 서울의 구와 동네 위치를 나보다 훨씬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나는 지방의 주요 도시와 도의 위치를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만 서울의 세부 지리는 잘 몰랐고, 그 친구들은 그 반대였다.

그때부터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치는 정말 모두가 알아야 하는 상식일까. 아니면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상식이라고 느낀 것일까.

상식은 누구의 상식인가

처음에는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상식이 아닌지를 구분해보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면 상식일까.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면 상식일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이어야 상식일까.

하지만 생각할수록 경계가 흐려졌다.

예를 들어 내 또래 남자들 중에는 슬램덩크, 드래곤볼, 원피스를 당연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대화 중에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등장인물이나 유명한 장면을 바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원피스는 거의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도 우리 세대 남성에게는 상식일까.

또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지인 중에는 학창 시절에 이효리와 배용준을 몰랐다는 사람이 있었다. 단순히 연예인 한두 명을 몰랐다고 보기에는 두 사람이 당시 한국 사회에서 차지했던 위상이 너무 컸다.

이효리와 배용준은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 당대의 문화적 아이콘에 가까웠다. 마이클 조던을 단순히 NBA 선수 한 명으로만 보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그 정도의 인물을 모른다면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끝나는 걸까. 아니면 당시 사회가 공유하던 중요한 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봐야 할까.

이런 사례들을 생각하다 보니 상식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느꼈다.

상식은 지식이라기보다 공유된 배경에 가깝다

내가 지금 가장 이해하기 쉬운 상식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평균적인 사람이 특정 사회와 시대를 살아가며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식.

이렇게 보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치도 상식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이효리와 배용준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이나 IMF 외환위기, 스마트폰 같은 것도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학교, 가정, 지역, 직업, 세대, 취미, 인간관계에 따라 접하는 정보는 크게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정보일 수 있다.

결국 상식은 완전히 보편적인 지식이라기보다, 한 사회나 집단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배경지식에 가깝다.

문제는 이 기대가 자주 현실보다 과장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자연스럽게 배운 것을 남들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모르면 정보의 차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 지능이나 성실성의 문제로 해석하기 쉽다.

상식이라는 단어가 위험해지는 순간이다.

상식을 모르는 것과 결함은 같은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을 모를 수는 있다.

전라도의 위치를 모를 수도 있고, 이효리를 모를 수도 있고, 드래곤볼을 모를 수도 있다.

그 자체는 정보가 비어 있는 상태일 뿐이다.

모르는 것을 곧바로 인간적인 결함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황에 따라 그 지식의 부재가 다른 문제를 짐작하게 만드는 경우는 있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 당대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을 전혀 모른다면 단순한 연예 지식의 부족보다 대중의 생활과 감각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요 지역 위치를 모른다면 지리 문제 하나를 틀린 것보다 그 사람이 사회를 이해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의 신호일 뿐, 그 사람 전체를 판정하는 정답지는 아니다.

상식을 모르는 것과 실제 결함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월감을 행사하지 말자

요즘 상식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모습을 보면 지식을 설명하기보다는 상대를 공격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몰라?

이걸 모르면 상식이 없는 거 아니야?

이런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구나.

겉으로는 상식에 관한 이야기지만 실제 의미는 종종 다르다.

내가 아는 것을 너는 왜 모르지?

나는 너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보다 낫다.

상식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지식 서열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상식인지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보다 상식이라는 말을 어떤 태도로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을 곧바로 멍청하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단정할 이유는 없다.

지식을 알려주는 것과 지식을 이용해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행동이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모르면서 확신하지는 말자

반대편에도 문제가 있다.

모르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모르면서 단정하고 주장하는 순간에는 책임이 생긴다.

전라도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 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위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된 내용을 자신 있게 주장하고, 정정해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드래곤볼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단순한 경험의 차이다.

하지만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의 가치나 인기를 단정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시한다면 무지는 태도의 문제로 변한다.

결국 중요한 원칙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상식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우월감을 위해 사용하지 말자.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모르면서 함부로 단정하지 말자.

아는 사람은 지식을 권력처럼 사용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무지를 확신처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앞 문장까지만 말하면 된다

이번 이야기를 하며 특히 마음에 남은 두 문장이 있다.

내 경험과 근거로는 이것이 맞다고 본다.

이것이 당연한 진리인데 반대하는 사람은 멍청하다.

사실 앞 문장까지만 말하면 된다.

자신의 경험과 근거를 바탕으로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판단을 내리지 않고 모든 것을 상대적인 문제로 돌릴 필요도 없다.

문제는 꼭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은 무지하다. 수준이 낮다. 생각이 없다. 상식이 없다.

그 한 문장을 붙이면 묘하게 속이 시원해진다. 복잡한 문제가 단순해지고, 내가 옳은 사람이라는 느낌도 선명해진다.

말하자면 뇌가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시원함의 대가는 시야의 좁아짐이다.

내가 가진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과 반대하는 사람이 멍청하다는 것은 별개의 주장이다. 앞의 주장이 맞더라도 뒤의 주장까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각을 말할 때 한 번쯤 멈출 필요가 있다.

지금 덧붙이려는 이 문장은 내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인가.

나도 다른 주제에서는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

상식을 함부로 들먹이는 사람을 보며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나는 다른 주제에서 똑같이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상식에 관한 문제에서는 비교적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스포츠, 세대, 직업, 취미, 인간관계 같은 다른 주제에서는 내가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남을 쉽게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의 싸움을 보며 "왜 저런 문제로 싸우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는 것조차 때로는 같은 함정일 수 있다.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의 감정과 사정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정말 당연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가지고 있는 정보와 경험이 다르다. 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는 기준 역시 특정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판단을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고, 내 경험과 근거를 바탕으로 의견을 말할 것이다. 다만 내 판단 역시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수정할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다.

상식보다 중요한 것

처음에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치를 아는 것이 상식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상식은 그 정의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상식은 사회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공유하는 배경지식이다. 그러나 그 배경지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식은 사람을 줄 세우는 시험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알려주면 되고, 내가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아는 것을 자랑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사람을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확신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확신하는 순간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내 경험과 근거로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정도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생각과 대화는 훨씬 넓어질 수 있다.

결국 상식에 관해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은 의외로 단순하다.

모른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안다고 거만해하지 말자.

그리고 남들에게 이 말을 하기 전에 일단 나부터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